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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공예

초벌·재벌·삼벌, 도자기를 굽는 세 번의 시간

by myview2260 2025. 4. 10.

1. 초벌구이란 무엇인가 – 도자기 공정의 첫 번째 관문

도자기를 만드는 데 있어 첫 번째 소성과정인 **초벌구이(素燔燒)**는 작품의 기본적인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핵심 단계다. 초벌은 흙 상태의 도자기가 일정 기간 동안 자연 건조를 마친 후, 약 **700~900℃**의 온도에서 굽는 공정이다. 이 단계는 도자기의 내구성과 수축 안정성을 확보하며, 이후 진행될 유약처리와 재벌구이에 적합한 상태로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초벌구이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조 상태의 점검이다. 작품이 완전히 건조되지 않은 채로 가마에 들어가게 되면 내부 수분이 열에 의해 급격히 팽창하며 균열이나 폭발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초벌 전에는 손으로 만졌을 때 차갑지 않고, 표면이 완전히 백회색이나 황토색으로 변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한다.

초벌의 또 다른 목적은 흡수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초벌된 도자기는 유약을 흡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 흡수성이 부족하면 유약이 고르게 입혀지지 않으며, 너무 과하면 유약이 스며들어 표면이 매끄럽지 않게 마무리될 수 있다. 즉, 초벌은 유약 처리 전 작품의 최적의 물리적 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준비단계다.

초벌을 진행하는 가마는 일반적으로 전기가마, 가스가마, 장작가마 등 다양한 방식이 있으며, 이 중에서도 전기가마는 온도 제어가 용이해 많은 공방에서 사용된다. 또한, 초벌 후의 작품은 색상이 밝고 표면이 다공성으로 변해 있어 비교적 가볍고 쉽게 다룰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상태는 매우 깨지기 쉬우므로 운반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초벌·재벌·삼벌, 도자기를 굽는 세 번의 시간


2. 재벌구이 – 유약과 불이 만들어내는 예술적 결정체

**재벌구이(本燔燒)**는 도자기 제작의 중심이 되는 두 번째 소성 단계로, 작품의 외관적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결정짓는 핵심 과정이다. 초벌 과정을 마친 도자기에 **유약(glaze)**을 바르고, **1,200~1,300℃**의 고온에서 다시 한 번 굽는 이 단계는 단순히 열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유약, 작가의 의도가 조화를 이루는 일종의 화학적·예술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유약은 도자기의 ‘피부’이자 감성의 전달자다. 유약을 선택하고 바르는 방식은 작품의 전반적인 인상을 좌우한다. 무광인지 유광인지, 투명인지 불투명인지, 균일하게 바를 것인지 자연스럽게 흐르게 둘 것인지 등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예를 들어, 투명유약은 아래 무늬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며, 회화적인 유약은 붓으로 그린 문양이나 텍스처를 더욱 부각시킨다. 철유청유, 백유 등 전통 유약은 각각 고유의 색상과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실리카, 알루미나, 플럭스의 비율에 따라 용융점과 질감이 달라지므로 레시피 조합도 매우 중요하다.

재벌구이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유약을 잘 고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마 속 불의 흐름, 공기의 양(산화·환원 분위기), 그리고 유약이 녹는 온도에서의 화학 반응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특히 **환원 소성(reduction firing)**은 산소를 제한하여 금속 성분이 화학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어 전혀 다른 색상을 구현하는 데 핵심이다. 예를 들어, 구리(Cu)가 포함된 유약은 산화 소성에서는 초록빛, 환원 소성에서는 선명한 붉은빛을 낼 수 있다. 이처럼 결과는 정해진 공식이 없고, 작가의 경험과 감각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가마의 종류도 재벌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기가마는 온도 조절이 쉽고 안정적인 반면, 가스가마장작가마는 불의 흔적과 색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 보다 감성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장작가마에서 나오는 **재흔(ash mark)**이나 **불자국(flame trail)**은 의도하지 않아도 작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 요소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은 도자기라는 매체가 지닌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소성 중에도 예술은 계속된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유약은 점차 녹아 액체 상태가 되는데, 이때 유약은 중력과 표면 장력에 따라 서서히 흘러내리며 작품의 표면을 덮는다. 이 **유약 흐름(glaze run)**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매우 아름다운 효과를 낸다. 일부 작가들은 유약의 일부가 고르게 흐르도록 의도적으로 작품에 작은 턱이나 홈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다만 이 흐름이 과도하면 받침대까지 유약이 흘러붙어 작품이 가마에 붙어버릴 위험도 있어 **받침틀(스터릿)**이나 가마 받침 타일을 활용해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재벌이 끝난 후에도 도자기는 아직 고온의 열을 품고 있다. **서서히 냉각되는 과정(cooling down)**도 작품의 색과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 급격한 냉각은 유약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를 **크레이징(crazing)**이라고 한다. 의도된 크레이징은 미학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식기로 사용할 경우 위생상의 문제가 될 수 있어 사전 고려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재벌은 단순히 도자기를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작가의 창의성과 기술, 그리고 ‘운’이 모두 작용하는 복합적 예술의 시간이다. 같은 유약과 가마라도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이 예측 불가능성은 작가로 하여금 더욱 겸허하게 자연과 불을 대하게 만든다. 매 소성마다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통해 조금씩 쌓아가는 ‘감각의 데이터베이스’는 결국 작품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기반이 된다.


3. 삼벌구이 – 고급 도자기의 결정적 공정

**삼벌구이(三燔燒)**는 도자기를 두 차례 굽고 난 후, 추가로 한 번 더 굽는 공정이다. 일반적으로는 세 번째 소성과정으로, 장식적 요소의 강화금·백금·은 등의 금속 성분을 작품에 입힐 때 사용된다. 따라서 이 과정은 일반적인 식기류보다는 고급 장식용 도자기전통 백자, 궁중 자기, 혹은 현대적 예술 도자기에서 주로 활용된다.

삼벌에 사용하는 재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채, 은채, 백금채 등으로, 이는 유약 위에 따로 분말을 섞은 안료를 덧입혀 가마에서 다시 한 번 굽는 방식이다. 이때의 소성 온도는 보통 700~850℃ 사이의 저온에서 진행된다. 너무 높은 온도는 금속 성분이 타버리거나 유약이 다시 녹아 흐를 수 있으므로, 온도 조절이 매우 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삼벌구이를 통해 도자기는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화려한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 섬세한 채색, 반짝이는 광택, 정교한 문양은 삼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결과물이다. 특히 전통 채색 기법인 ‘철화’, ‘청화’, ‘동채’, ‘금채’ 등이 삼벌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고착된다.

이러한 삼벌구이는 시간과 비용, 기술이 많이 소요되므로 소량 제작, 작가 의도 중심, 예술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 작품에 주로 활용된다. 또한 작품의 역사성이나 문화적 가치가 요구되는 복원 작업이나 박물관급 복제품 제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삼벌구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채색 가마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반 가마와는 달리 소형이거나 다단 온도 제어 기능이 있는 장비가 선호된다. 작가의 감각과 경험에 따라 섬세한 연출이 가능한 만큼, 이 과정은 ‘마무리’가 아닌 작품의 정점을 찍는 공정으로 간주된다.


4. 소성과정별 주의사항 및 실전 팁 – 온도, 시간, 반복의 예술

도자기를 굽는 모든 소성과정은 단순한 ‘가열’이 아닌, 시간과 온도를 섬세하게 조율해야 하는 정밀한 작업이다. 초벌, 재벌, 삼벌 각각의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존재하며, 실수 한 번이 전체 작품을 망칠 수도 있다.

첫째, 모든 소성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 관리다. 가마는 설정 온도 외에도 가마 내부 위치에 따라 온도차가 존재하므로, 작품 배치에 주의해야 한다. 온도계(콘, 콘사이저)를 함께 사용하여 실온, 가열, 유지, 냉각 과정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둘째, 소성 시간가열 속도도 중요하다. 급격한 온도 상승은 작품 내 수분 잔류로 인한 파열을 유발하고, 너무 느리면 에너지 낭비가 심하다. 초벌은 1시간 예열 후 점진적 가열, 재벌은 일정한 상승 곡선 유지, 삼벌은 일정 온도 유지 중심의 저온 처리가 일반적이다.

셋째, 작품 간 간격도 중요하다. 너무 밀착시켜 배치하면 가마 내부에서 열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색의 불균형, 유약 흐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재벌에서는 유약이 녹아 흐르기 때문에 받침이나 받침틀 등을 활용해 유약이 바닥에 묻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도자기 소성은 예측 불가능한 예술로, 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소성과정에서의 ‘우연’은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이며, 이러한 경험은 장기적으로 작가의 감각과 판단력을 키우는 자산이 된다.


마무리 – 불이 만든 시간, 도자기라는 결과

도자기를 굽는다는 것은 단순히 흙을 태우는 행위가 아니다. 초벌은 준비의 시간, 재벌은 예술적 창조의 순간, 삼벌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공정은 시간, 온도, 재료라는 변수 속에서 창작자의 철학과 감성을 반영하며, ‘느림’과 ‘기다림’을 통해 완성되는 고유한 예술 세계를 만들어낸다.

도자기 소성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결국 시간과 불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정해진 공식은 없지만, 반복과 실험을 통해 나만의 ‘화염의 감각’을 기르게 되고, 그것은 곧 작품을 넘어 삶의 태도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도 가마 앞에 선 당신이 굽는 그 한 점의 도자기에는, 긴 기다림과 작은 기적이 함께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