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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공예

감각으로 빚는 공감 –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흙 공예 수업 이야기

by myview2260 2025. 4. 23.

감각으로 만나는 흙 – 시각장애인을 위한 창작의 시작

 

흙은 눈으로 보기보다 손끝으로 느낄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흙 공예 수업은 이러한 감각의 재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창작 공간입니다. 이 수업은 일반적인 도자기 제작 강의와는 전혀 다릅니다. 기본적인 형태나 장식법을 넘어서, '느낌' 그 자체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업에 참여한 시각장애인들은 점토를 손끝으로 천천히 만지며 흙의 온도, 수분감, 질감을 먼저 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형상을 만들어 갑니다. 손끝에서 뇌로 전해지는 감각 정보가 마치 붓처럼 작용하는 셈입니다.

강사는 형태를 설명하기보다는 감각을 유도합니다. "표면이 매끄러워질 때까지 닦아볼까요", "울퉁불퉁한 질감을 그대로 살려도 좋아요" 같은 언어들이 흙과 교감하는 새로운 언어가 됩니다. 특히 시각 중심 교육에 익숙했던 비장애인 강사에게도 이 수업은 감각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됩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들은 점점 더 소리와 촉감, 냄새와 리듬에 집중하게 되며, 도자기라는 매체가 얼마나 오감에 열려 있는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이렇듯 감각 중심의 흙 공예 수업은 시각적 한계를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의 확장’을 보여주는 장이 됩니다.

감각으로 빚는 공감 –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흙 공예 수업 이야기

감각의 확장 – 완성된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들

 

흙 공예 수업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은 단순히 '잘 만든 도자기'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들 작품은 시각적 미보다는 개인의 감각적 기억과 감정이 담긴 조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참여자는 어릴 적 듣던 바닷소리를 기억하며, 굴곡이 많은 조개껍질 모양의 컵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자신의 안내견의 발 모양을 형상화하여 작품에 각인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작품 하나하나에는 이야기와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만든 도자기는 전통적인 비율이나 균형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 틀을 벗어난 감각의 자유를 표현합니다. 일부 작품은 굴곡이 많고 비대칭적이지만, 그 안에 살아있는 감정선이 그대로 담겨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또한 수업을 통해 자신만의 사인을 만들거나, 점토에 본인의 손바닥 자국을 남기는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자기 존재의 확언이자 정체성의 시각화로 이어졌습니다. 완성된 도자기를 손으로 더듬으며 “이건 나를 닮았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도자기가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감정의 그릇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창작물들은 전시회를 통해 지역사회와 공유되기도 하며, 감각 중심 공예의 가능성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계기가 됩니다. 예술은 감각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순간들입니다. 감각의 결핍이 아닌 다름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들 작품은, 관람자에게도 감정의 파동을 일으키는 새로운 미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예술의 장벽을 허물다 – 포용적 공예 수업의 의미

 

시각장애인을 위한 흙 공예 수업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예술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하나의 모델이 됩니다. 감각 중심 접근은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핍’이 아닌, 다른 표현 방식으로 인정하게 합니다. 공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이기에, 이는 시각 중심의 예술교육이 놓치고 있던 중요한 지점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이 수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배려’와 ‘공존’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닌,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예술 수업으로 설계된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워크숍도 시도되었으며, 이는 서로의 감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회를 만들어냈습니다. 비장애인 참여자들 역시 눈을 감고 흙을 만지며 ‘보지 않고 느끼는 조형’을 경험했고, 이는 예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이 수업은 포용적 디자인 교육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도자기 전시나 체험 활동이 늘어나면서, 예술 공간 자체가 점점 더 접근성을 고려하게 되었고, 이는 사회적 구조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각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예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수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단지 물리적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 함께 창작하는 공동체, 그리고 감각을 통해 이어지는 공감의 경험이 바로 이 수업의 가장 큰 성과이자 예술의 본질입니다.

흙으로 이어진 공감 – 감각 예술의 미래를 상상하다

 

이러한 감각 중심 흙 공예 수업은 단지 예술 창작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예술(Socially Engaged Art)로서의 가능성까지 제시합니다. 시각장애인의 창작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수업은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권을 존중하고, 그 결과물을 사회와 공유하는 열린 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예가 단순한 취미나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 참여자는 수업을 마친 후 "처음으로 누군가 내 손끝의 감각을 기다려줬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점토를 만지며 만든 그릇을 넘어, 누군가의 삶과 감정, 기억을 수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각 중심 공예는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으며, 참여자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자 타인과 연결되는 다리로 기능합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수업은 보다 많은 예술 장르와 융합될 수 있으며, 촉각 기반 전시, 다감각 체험 프로그램, 시각장애 예술가와의 협업 등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은 결국 '예술은 누구나의 것'이라는 선언을 실현하는 데 가까워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흙을 만지는 손끝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작품으로, 전시로, 사회적 대화로 이어지는 이 여정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답은 바로, 함께 만드는 것. 그리고 다름을 끌어안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흙은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감정을 조형하고 있습니다.